[동행취재] “나만의 열사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열사로”

▲ 출발하기에 앞서 “가자! 박영재 열사와 함께!” 구호를 외치는 참가자들. ⓒ뉴스Q 장명구 기자

박영재 열사 7주기 추모제를 앞두고, 열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열사가 마지막으로 걸었던 길을 함께 걷는 행사를 열었다. 수원역에서 옛 통합진보당 당사까지이다.

사람들은 박영재 열사의 정신을 되새기며 한걸음 한걸음 내딛었다. 아직도 이뤄지지 않은 통합진보당의 명예회복을 다짐했고 이석기 의원의 석방을 요구했다. 열사가 염원했던 진보정당 집권의 시대와 자주 민주 통일 세상을 열자고 촛불을 높이 들었다.

<수원역에서> “여전히 열사의 죽음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박영재 열사 7주기 추모기간 첫 행사로 ‘박영재 열사와 함께 걷다’ 행사가 열렸다.

이번 행사는 박영재 열사 추모사업회(회장 안동섭)에서 주최했다.

12일 오후 4시 30분 수원역 광장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박영재 열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다.

추모사업회 안동섭 회장, 임미숙 집행위원장, 민중당 경기도당 정형주 위원장, 민중당 수원시위원회 임은지 위원장, 윤경선 수원시의원, 수원지역목회자연대 정종훈 목사 등이 참석했다.

박영재 열사와 경기민주버스노동자회 활동을 함께했던 고홍규 씨도 참여했다. 열사의 동생 영석 씨도 함께했다.

안동섭 회장은 인사말에서 “자주통일을 향한 평화번영의 시대가 시작됐다. 새로운 시대에 박영재 열사를 추모하는 마음은 전과는 달라야 한다”면서도 “여전히 열사의 죽음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답답하다. 마음이 무겁다. 분노가 치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안 회장은 “진보정당 열사로서, 자주통일 열사로서 좀더 많은 시민들이 박영재 열사를 기억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며 “오늘 열사가 걸었던 길을 따라가며 열사가 우리에게 하고자 했던 말은 무엇일까?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 살았다면 나에게 뭐라고 했을까? 되새겨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에게는 ‘기억의 수첩’을 하나씩 나눠줬다. 수첩에는 ▲열사의 생애 ▲열사의 유서 ▲열사 관련 통합진보당 주요 사건 일지 등의 내용이 담겼다.

참가자들은 “가자! 박영재 열사와 함께!” 구호를 외쳤다. 오후 4시 55분 영등포행 기차에 올랐다.

▲ 옛 통합진보당 당사를 향해 도보행진을 하고 있는 참가자들. ⓒ뉴스Q 장명구 기자

<영등포역에서> “사람 좋게 웃는 것이다”

오후 5시 30분 기차가 영등포역에 도착했다.

민중당 고문이기도 한 평화협정운동본부 송무호 상임대표 등 몇 사람이 더 합류했다.

다시 “가자! 박영재 열사와 함께!” 구호를 외치며 옛 통합진보당 당사를 향해 도보행진을 시작했다.

사람들은 박영재 열사가 생전 즐겨불렀던 노래 ‘민주노동당가’ ‘통일선봉대 찬가’ ‘비정규직 철폐가’ 등을 들으며, 부르며 걸었다.

고홍규 씨는 박영재 열사와 함께 경기민주버스노동자회 활동을 했다. “영재가 버스를 개혁해보려고 제일 앞장서서 노력했다”며 “그때 분신하고 나서 병원에 누워있을 때 이틀에 한 번씩은 병문안을 갔다”고 떠올렸다.

고 씨는 “아~” 하고 긴 한숨을 내쉬며 “뭐라고 어떻게 얘기를 못 하겠다”고 말했다. “안타깝다. 억울한 심정이다”라고 했다.

고 씨는 박영재 열사에 대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사람 좋게 웃는 것이다”라고 답했다.

윤경선 수원시의원은 박영재 열사와 함께 통합진보당 서수원분회 활동을 했다. “동네 지역아동센터에서 뭔가 고장나면 맥가이버처럼 와서 고쳐주곤 했다”고 떠올렸다.

윤 의원은 “박영재 열사는 당활동을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며, “특히 열사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열사가 외롭고 힘든 당원들을 만나 밥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윤 의원은 “지금 제가 수원시의원으로 당선된 것도 박영재 열사가 뿌린 씨앗의 결과이다”라며 “진보집권을 동네에서라도 이루겠다는 열사의 마음이 있어서 당선된 것 같다”고 말했다.

윤 의원은 “지금은 수원시의회에 진보시의원이 저 한 명뿐이다”라며 “민중당이 열사의 뜻대로 수원시에서 노동자를 위한 정치를 하는 정당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영등포역을 출발한 참가자들은 신길역을 거쳐 대방역에 다달았다. 저만치 옛 통합진보당 당사가 보였다.

▲ 공연을 하는 민중당 수원시위원회 서수원분회 김현숙 분회장과 윤경선 수원시의원. ⓒ뉴스Q 장명구 기자

<옛 통합진보당 당사에서> “박영재 열사도 예수님과 같은 마음으로 이 길을”

저녁 6시 30분 한 시간 정도 걸려 마침내 옛 통합진보당 당사에 도착했다.

안동섭 회장이 사람들에게 “이곳이 박영재 열사가 분신한 곳이다”라고 자리를 안내했다.

사람들은 도착하자마자 ‘박영재 열사께 바칩니다. 2019. 5. 12’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작은 액자에 형형색색의 손도장을 찍었다. 오는 6월 23일 마석모란공원 열사의 묘역 앞에서 있을 추모제 때 추모함에 넣을 것이라고 했다.

임은지 위원장이 박영재 열사가 분신하기 직전 지인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낭독하며 ‘기억의 촛불’이 시작됐다.

“영등포행 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생의 마지막 책을 한 장도 읽지 못 했는데 벌써 도착했네요....”

임 위원장은 “7년이 지났지만 박영재 열사는 여전히 우리의 마음속에 살아있다. 우리의 가슴속에는 많은 아픔이 있다”며 “그 슬픔은 지역에서 실천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민중당 윤경선 수원시의원과 김현숙 서수원분회장은 민중가요 ‘동지들 앞에 나의 삶은’을 낭송했다. 김 분회장이 플루트로 민중가요 ‘동지들 앞에 나의 삶은’을 연주하자 그에 맞춰 윤 의원이 민중가요 ‘동지들 앞에 나의 삶은’을 읊었다. “나의 사랑과 믿음이 되는 동지들 앞에 나의 삶은 부끄럽지 않은지....”

정종훈 목사는 인사말에서 지금이 부활절 4주일임을 상기시키며 박영재 열사의 유서 일부분을 읽었다.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함께 가자. 행복했습니다. 동지들과 함께 투쟁하고 학습하고 실천했던 나날들이 말입니다. 부탁이 있습니다. 자주 민주 통일 조국을 만들어 주십시오.”

정 목사는 “저는 사실 박영재 열사를 모르다가 열사의 유언을 대하면서 열사도 예수님과 같은 삶을 살았던 분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됐다”며 “열사는 정치 종교 자본 지배권력에 맞서서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들 편을 들다가 그 권력에 의해 죽임 당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았던 예수님을 생각나게 한다”고 말했다.

정 목사는 “참 사람 세상을 향해 참 사람의 길을 멈추지 않고 걸어가신 예수님처럼, 열사도 착하고 순수하지만 열정적이고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며, 최선을 다해 당과 민중을 위해 희생하고 최선을 다해 사랑을 실천했던 삶을 사신 분이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정 목사는 “박영재 열사가 살아계셨다면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세월호 학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남북 평화와 통일을 위해, 이 사회 적폐청산을 위해, 적폐의 몸통인 자유한국당 해체를 위해 투쟁하셨을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정 목사는 “박영재 열사와 함께 걸으며 상상을 했다. 열사가 기차를 타고 영등포역에서 통합진보당 당사까기 걸었던 길을 걸으며 예수님이 가셨던 길을 생각했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던 예수님이 걸으셨던 그 길을 떠올렸다”며 “박영재 열사도 예수님과 같은 마음으로 이 길을 걸어오지 않았을까? 이 길이 죽음의 길이 아니라, 끝나는 길이 아니라, 절망의 길이 아니라 생명의 길, 부활의 길, 우리 모두가 다시 하나되는 길이라고 믿고 이 길을 오지 않았을까? 그렇게 믿는다”고 말했다.

정 목사는 “열사는 죽어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와 함께하고 계시다. 우리 가운데 부활하셨다는 말이다”라며 “이석기 의원 석방을 간절히 원하는 우리와 하나되어 함께하고 계시다”고 말했다. “참된 진보의 길, 참 사람의 길을 가고자 하는 우리와 함께하고 계시다”고 했다.

정 목사는 “이렇게 박영재 열사와 하나된 우리는 진실이 결국 이긴다는 것을 알기에 거짓 앞에서 끝까지 진실을 말한다”며 “언제나 진리와 정의, 생명과 평화의 편에 서 있다”고 말했다.

정 목사는 “박영재 열사의 뜻을 이어받는다고 하는 것은 열사를 통합진보당이나 민중당에 가둬놓는 것이 아니다”라며 “박영재 열사를 과감하게 밖으로 드러내야 한다. 이 세상이 열사의 뜻을 기억하고 이어받을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만의 열사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열사로, 열사의 정신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 인사말을 하는 수원지역목회자연대 정종훈 목사. ⓒ뉴스Q 장명구 기자

“박영재 열사의 뜻을 받드는 길은 민중당이 집권하는 길 뿐”

참가자들도 돌아가면서 박영재 열사와 함께 걸으며 느낀 소감을 말했다.

민중당 정형주 위원장은 “이제야 말로 박영재 열사 정신을 보다 더 전면적으로 구현할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송무호 고문은 “박영재 열사의 뜻을 받드는 길은 미국 놈 몰아내고 자주세상, 민중세상을 이루는 데 민중당이 집권하는 길 뿐이다”라고 말했다.

임미숙 집행위원장은 “우리 민중당이 집권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을 것이다. 박영재 열사를 생각하면서 다시 힘을 내자”며 “열사와 함께 걷는 길은 진보정당 집권의 길, 자주 민주 통일의 길이다”라고 말했다.

김미희 전 통합진보당 의원은 “박영재 열사는 통합진보당이 가장 곤경에 처하고 가장 오해를 받고 가장 어려움에 처했을 때 몸을 바쳐서 당을 지키고자 했고 많은 당원들의 가슴을 울려 통합진보당을 지켜내셨던 분이다”라며 “정당해산이라는 잘못된 판결로 통합진보당 창당 정신과 쌓았던 성과를 많이 잃기는 했지만 훌륭한 동지들이 많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가장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들을 회복해서 지금 시대의 시대가 바라는 사명을 담당해 나갔으면 한다”고 했다.

안동섭 회장은 “박영재 열사는 억울하게 죽었다.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억울하다. 살아있었다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며 “그래서 열사가 하고 싶었던 일을 우리가 하는 것이 박영재 열사를 기억하는 참된 의미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안 회장은 “박영재 열사가 지키려했던 통합진보당의 통합정신과 자주 민주 통일의 기치를 훼손시키며 자기 멋대로 의사봉을 휘두른, 분열의 원인을 제공했던 가해자들이 피해자로 뒤바뀌어 있다”며 “그 당사자들이 한 번도 사과하지 않았다. 애도를 표하는 것을 보지 못 했다. 그것이 너무 한스럽고 억울하다. 반드시 우리 때에 이루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 완성은 우리 진보정당이 집권을 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날 ‘박영재 열사와 함께 걷다’ 행사는 박영재 열사가 평소 즐겨불렀던 민중가요 ‘비정규직 철폐가’를 다 같이 부르며 모두 마무리됐다.

박영재 열사 추모사업회는 마석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에서 추모제가 열리는 오는 6월 23일까지를 추모기간으로 선정했다.

이날 ‘박영재 열사와 함께 걷다’ 행사를 비롯해 ▲추모제 슬로건 공모 ▲추모문집 읽기운동 ▲SNS에 추모글 올리기 ▲7주기 추모위원 모집 등 열사를 기억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벌인다. ‘박영재 열사 평전’ 발행을 준비하고 있다.

▲ 기차에 오르는 참가자들. ⓒ뉴스Q 장명구 기자
▲ 기차 안에서. ⓒ뉴스Q 장명구 기자
▲ 영등포역에서구호를 외치는 참가자들. ⓒ뉴스Q 장명구 기자
▲ 행진을 하는 민중당 수원시위원회 임은지 위원장(왼쪽)과 윤경선 수원시의원(가운데). ⓒ뉴스Q 장명구 기자
▲ 도보행진을 하는 박영재 열사의 동생 영석 씨. ⓒ뉴스Q 장명구 기자
▲ 도보행진을 하는 박영재 열사 추모사업회 안동섭 회장(왼쪽)과 민중당 송무호 고문. ⓒ뉴스Q 장명구 기자
▲ 행진을 하는 민중당 수원시위원회 은동철 부위원장(왼쪽)과 임은지 위원장. ⓒ뉴스Q 장명구 기자
▲ 추모액자에 손도장을 찍는 모습. ⓒ뉴스Q 장명구 기자
▲ 발언을 하는 민중당 경기도당 정형주 위원장. ⓒ뉴스Q 장명구 기자
▲ 비정규직 철폐가를 부르는 참가자들. ⓒ뉴스Q 장명구 기자
▲ 사진 가운데쯤이 박영재 열사가 분신한 장소. ⓒ뉴스Q 장명구 기자
▲ 기억의 촛불을 든 참가자들. ⓒ뉴스Q 장명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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