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민언련, ‘고 장문하 대표 4주기 추모 강연회’ 개최

▲ 열강을 펼치고 있는 김원웅 광복회장. ⓒ뉴스Q 장명구 기자

‘고 장문하 대표 4주기 추모 강연회 및 회원의 날’ 행사가 10일 저녁 책고집(구 경기민언련 사무실, 팔달구 신풍로 74)에서 열렸다.

이번 추모 강연회 및 회원의 날 행사는 경기민주언론시민연합(경기민언련)에서 주최했다.

경기민언련 송성영 공동대표, 민진영 사무처장, 송원찬 운영위원장 등 회원 30여 명이 참석했다.

추모 강연회 강사로 광복회 김원웅 회장을 초청했다.

김 회장은 조선의열단 김근수 선생과 광복군 전월선 여사의 후손이다. 14대, 16대, 17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조선왕실의궤환수위 공동대표, 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 회장,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 대표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일본의 재무장은 미국의 전략과 맞물려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만든 것이 45년 분단체제다”라며 “지금 그 분단체제가 무너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로마제국, 대영제국 등의 예를 들며, “역사적으로 모든 제국은 해외 주둔군을 유지하려다가 무너졌다. 미국은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으로 일본 재무장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의 재무장은 미국의 전략과 맞물려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45년 미국의 맥아더가 미국에 보고한 내용을 폭로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맥아더는 ‘남한의 민족주의자들이 집권하면 골치 아프다. 친일파를 고용해야 미국에 충성을 다할 것이다. 남한을 식민지로 쓰자’라는 내용을 골자로 보고했다”며 “이것이 미국의 기본전략이다”라고 말했다. “미국 포고령의 핵심은 친일청산을 안 하겠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김 회장은 이어 4.3항쟁, 여순항쟁, 4.19혁명, 5.18항쟁, 6월항쟁 등을 언급하며, “미국은 해방 후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그 프레임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친일반민족세력과 싸워온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촛불혁명으로 대통령은 바뀌었지만 친일반민족세력에 기반을 둔 기득권세력은 전혀 안 바뀌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정치, 경제, 언론, 사법 등 나머지 기득권세력은 전혀 안 바뀌었다”며 “모두 친일반민족세력에 기반을 둔 세력들이다”라고 말했다. “그 기득권세력들이 위기감을 느껴서 저항하는 것이 지금의 혼란이다”라고 했다.

김 회장은 내년 총선과 다음 대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회장은 “이제 기득권세력들이 일장기를 들던 손으로 성조기를 들고 다닌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은 그들이 아니라 촛불세력이다”라며 “그들이 기득권을 놓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 과도기다”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이제 의회주의 선거로 바꾸어야 한다. 그래서 내년 총선, 그 다음 대선이 중요하다”며 “이 고비를 잘 넘겨야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앞으로 10년 안에 어떤 정치세력이 집권하느냐가 중요하다”며 “이것이 향후 우리 민족의 100년, 200년을 좌우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통일은 항일독립운동 정신을 이어받은 양심있는 세력이 하나되는 것이 돼야 한다”며 “하지만 남한은 그 양심세력이 무너졌다. 그것을 복원시키는 것이 과제다”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민족 분단은 외세에 의해 됐다”며 “하지만 통일은 자주 역량을 키워서 스스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김 회장은 친일청산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김 회장은 “적폐청산의 핵심은 친일청산이다”라며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고 말했다.

강연에 앞서, 고 장문하 대표와 함께 활동했던 박우석 선생이 회고담을 풀어냈다.

박 선생은 “1993년으로 기억한다. 장문하 선생과 전철을 타고 왔다갔다를 반복하며 홍보물이 다 떨어질 때까지 돌렸다”며 “그때만해도 언론운동이 활성화되지 않아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박 선생은 “장문하 선생은 언론운동에 타고난 분이다. 어디를 가나 ‘안티조선’ ‘조선일보 보지 말자’ 등을 입에 달고 다니셨다”며 “그분에게는 안티조선이 가장 중요한 주제였다”고 말했다.

박 선생은 “장문하 선생 같은 분이 계셔서 언론운동도 활성화되고 많이 변한 것이다”라며 “너무 아까운 분이 허망하게 돌아가셔서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고 장문하 대표는 지난 2015년 10월 10일 78세를 일기로 숙환으로 별세했다. 그는 한국 언론민주화를 위해 ‘안티조선운동’이라고도 하는 조선일보 반대운동에 앞장섰다. 2001년에는 경기민언련 창립에 적극 참여해 상임대표를 맡았다. 안티조선운동과 경기지역 언론민주화운동을 개척했다.

경기도청, 수원시청 기자실 폐쇄와 개방형 브리핑룸으로의 전환, 계도지 폐지 등 지역사회 언론민주화에도 기여했다. 특히 티브로드 수원방송의 부당한 수신료 인상에 맞섰던 투쟁은 경기지역 최초의 언론 수용자 주권찾기 시민운동이었다. OBS 창립 과정에 경기지역 대표를 역임하기도 했다.

고인의 유해는 수원연화장 추모의집에 안장됐다. 묘 번호는 2419번.

▲ 사회를 보는 경기민언련 민진영 사무처장. ⓒ뉴스Q 장명구 기자
▲ 고 장문하 대표를 회고하는 박우석 선생. ⓒ박성철
▲ 고 장문하 대표 4주기 추모 강연회 및 회원의 날. ⓒ뉴스Q 장명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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