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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영통노란리본공작소, “엄마로서 조금이라도 힘을 보탠다는 게 좋아요”

[인터뷰-4] 수원 영통노란리본공작소 담당 구민서 씨

기사승인 2020.02.28  19:5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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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통노란리본공작소. ⓒ영통노란리본공작소

- 노란리본공작소를 시작하게 된 이유나 계기는?

세월호 참사 1,000일 때쯤.... 제가 사는 지역 카페(영통주민모임터)에서 제가 올리는 세월호 활동 관련 게시글을 보고 노란리본을 동네에서 만들고 싶다고 제안을 해주셨어요.

가까운 용인에도 지역 카페(용인마녀) 중심으로 용인노란리본공작소가 있는 게 늘 부러웠거든요. 그런데 손 맵시 있으신 분이 먼저 제안 해주셔서 “그럼 한번 해볼까요?” 했지요. 첫 모임에 20명이 넘는 엄마들이 어린아이들을 안고, 유모차를 태우고 와주셨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게 ‘영통노란리본공작소’예요.

- 주로 어떤 분들이 참여하시나요?

영통지역은 전국에서 젊은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이기도 해요. 그래서 대부분 영유아를 둔 엄마들이 대다수를 차지해요. 이제 4년차이니 돌도 안 된 아가들이 이젠 유치원에 가고, 엄마 옆에 따라와서 리본 재료를 어지르던 꼬마 친구들이 이제 어엿한 초등학생이 됐어요. 함께 커가는 모임이라고 할 수 있어요.

- 노란리본공작소 운영 일정은 어떻게 되나요?

영통노란리본공작소는 매주 수요일 10시부터 12시 30분까지 황골마을 2단지 주공아파트 관리동 2층 북카페에서 리본을 만들고 있어요.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학교에 등원하고 삼삼오오 모여요.

- 매월 몇 개 정도의 노란리본을 만드시나요?

1주일에 1번 모여서 1번에 1,000개 이상의 세월호 기억 리본을 만들고 있어요.

그 외 세월호를 기억할 수 있는 새로운 재료들을 이용한 나비매듭, 머리끈, 펠트나비 등 기억 물품을 만들기도 해요. 다들 저 빼고 손 맵시들이 좋아서 한 번 배우면 척척 만들어내요. 저는 그저 신기하고 함께 해주시는 분들께 감사할 뿐이에요.

- 제작된 노란리본의 배포처는 어떻게 되나요?

영통지역의 주민센터, 도서관 등이고요. 세월호 참사 주기가 다가오면 전국, 해외에도 기억 물품을 보내고 있어요.

- 노란리본을 만들면서 어떤 마음이 드시나요?

노란색이 희망적이기도 하고 언젠가부터는 슬프기도 하고.... 여러 감정이 들어요.

꼭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 사람들이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 그리고 세월호 참사를 두고 험한 말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

리본 만들며 수다도 엄청나게 떠는데, 내 일상생활 속에서 세월호를 기억하고 안전한 사회를 위해 엄마로서, 시민으로서 조금이라도 힘을 보탠다는 게 좋아요.

   
▲ 영통노란리본공작소에서 만든 세월호 노란리본. ⓒ영통노란리본공작소

- 그동안 노란리본공작소를 운영해 온 힘은 어디에 있다고 보시나요?

우리 모두 우리 사회와 시대의 아픔을 함께 공감하고 작은 실천을 이어가는 따듯하지만 결코 식지 않는 마음? 펄펄 끓는 용광로는 아니어도 구들장처럼 내 가까운 사람들을 보듬는 힘이 우리 모임 안에 있어요. 아마 매탄촛불, 칠보주민들 등 수원416연대 풀뿌리모임도 비슷할 거라 생각해요.

-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몇 가지 소개해 주세요.

세월호 참사 유가족 분들이 영통노리공(영통노란리본공작소)에 오셨던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사실 처음에는 거대한 슬픔을 마주하는 것이 두렵고, 오시면 뭘 어떻게 해야할지,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 걱정했는데 막상 만나보니 동네 큰언니 같았어요.

가령 형제자매가 영통 인근 대학 학생이거나, 친인척 분이 이곳에 살고 있거나 하는 경우가 있었어요. 세월호 참사가 저 멀리 있는 일이 아닌 정말 우리 가까이의 일이구나 피부로 느껴졌어요.

북카페에서 만들다 보면 동네 아이들이 관심을 보이거나 “저 세월호 리본 알아요.” 하고 먼저 말을 걸어올 때가 있어요. “같이 만들래?” 하고 함께 만들기도 해요. 아이들에게 참 고맙고, 찡해요.

노무현 대통령 10주기 추모문화제에 영통 노란리본공작소가 광화문에 가서 아이들을 위해 리본 풍선 나눔과 원만이 인형(원만하게 진상규명이 이루어지는 소원인형) 만들기 부스에 참여하기도 했어요. 어린아이들 손잡고 버스를 몇 번 갈아타고 광화문에 갔는데 아이들은 너무 즐겁게 놀긴 했는데 집에 올 땐 아이들이 모두 잠들어서 애를 안고 업고.... 갈 땐 웃으며 갔지만 올 땐 땀을 줄줄 흘리며 왔던 기억?

- 노란리본공작소를 운영하시면서 어려운 점은 없으신가요?

사실 가장 큰 어려움은 장소였어요. 저희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주시는 곳도 있지만 “아직도 하냐?” 하시는 분도 계시거든요. 지나가시면서 한마디 툭툭 던지시거나 분위기가 차가우면 저희도 상처를 받거든요. 현재는 황골마을 2단지 부녀회에서 북카페에서 ‘영통노란리본공작소’ 모임을 할 수 있게 도움을 주셨어요. 안정적 공간이 생겨 장소 해결이 된 거지요.

- 올해 다짐이나 각오 한 말씀.

코로나19 사태로 모든 모임이 위축된 상태긴 해요.

곧 세월호 참사 6주기가 다가오는데 사람들이 잊을까 봐 걱정되기도 해요. 모든 국민이 현재 상태를 슬기롭게 헤쳐나갈 거라 생각하고요. 모두 힘냈으면 좋겠어요.

우리의 작은 손길로 만든 노란리본이 이 지역 사회를 따듯하게 지켜나갈 거라고 봅니다. 6주기가 아니라 60년 후에도 참사에 대한 기억을 이어가고 추모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작은 모임이지만 꾸준히 사회에 대한 관심과 실천을 이어나가려고 합니다. 저희는 이 자리에서, 이 동네에서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 영통노란리본공작소. ⓒ영통노란리본공작소

 

*이 기사는 원래 탐방 인터뷰를 통해 작성하려고 했으나,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서면으로 진행된 인터뷰 기사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이해를 바랍니다.[편집자주]

장명구 기자 news@newsq.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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